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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결말을 알기 원치 않으시는 분은 읽지 않으시는 것을 권합니다.

 

예쁘게 치장해놓고 왜 이렇게 날카롭고 슬픈 거야

 

'꿈의 제인'은 넷플릭스 시리즈 <D.P.>를 보고 난 후, 구교환 배우의 필모그레피를 통해 책갈피해놓은 영화였습니다. 언젠가 꼭 봐야지, 하고 마음은 먹었는데 오랫동안 보지 못하다 일에 지쳐 무기력의 끝에 다다른 어느 날 갑자기 보게 됩니다. 

 

영화의 포스터가 너무 좋았습니다. 너무나도 사랑하는 영화 '화양연화'의 색감을 닮은 몽환적이고 나른한 저 포스터에 매료되어 저는 영화도 몽환적이고 아름다울 것이라 막연히 기대했습니다.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포스터 하나 보고 영화 속으로 들어가다 보니 중간에는 이해가 좀 안 되었습니다.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습니다. 저는 '제인'이 처음부터 끝까지 어떤 이정표 역할을 하는 배역일 것이라고 예상했어서, 극 중반에 죽었을 때 제 심장이 툭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짧고 굵게 치고 가는 캐릭터였다니. 영화 제목이 '꿈의 제인'인데. - 영화를 다 보고 문득 떠올린 소설이 있었는데, 서준환 작가의 <수족관>이라는 작품입니다. 완전히 일치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영화를 재밌게 보신 분은, 소설도 분명 좋아하시리라 생각합니다. <너는, 달의 기억> 속에 실린 단편입니다.

 

이 영화의 주 인물들은 '가출팸'과 '드렉퀸'으로 일상에서 소외되어 있는 인물들입니다. 독립영화가 가지는 삶의 극한에 서있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분명히 상징적이고 매력적인 소재이지만,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입장에서는 감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장례식장의 향처럼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 강압적이었던 아빠를 쓰레기 구덩이에 밀어 넣고 아무렇지 않게 기름을 붓고 불을 붙이고, 강압적 성매매에서 벗어나려다 죽은 지수의 돈을 '선물'이라고 부르며 나누려는 장면들. 지수는 그 돈을 벌기 위해 정말 열심히 배달을 하고 일을 했고, 자신의 것을 지키려고 했을 뿐이었습니다. 사실 영화를 보고 조금은 마음이 힘들어, 무기력했던 마음이 더 바닥으로 가라앉는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아주 조금의, 그러나 단단한 웃음으로 이 땅에 딛고 일어서기를

사실 저는 이 영화를 좋게 보지 않습니다. 저는 사실 힘이 들었습니다. '가출팸'이 나와서, '드랙퀸'이 나와서 불편했던 것이 아닙니다. 이 영화의 긍정적인 장면은 무엇이었을까요? 강압적인 힘에 제압되지 않고 끝까지 자신을 지키고자 했던 지수의 반항일까요? 맨 마지막 제인의 공연 전 독백일까요? 

 

"자, 우리 죽지 말고 불행하게 오래오래 살아요. 불행한 얼굴로 여기, 뉴월드에서."

 

이 영화를 보던 날의 제가 불행과 무기력에 젖어 감정이 바닥에 닿아있었기에 저 대사는 너무나도 마음에 와닿았었습니다. 저도 인생은 비속어라고 생각합니다. - 얼마 전에 발매된 이승윤의 <말로장생> 중 가사입니다. - 제인이 자살하지 않았다면, 저는 저 대사를 너무 사랑했을 것 같습니다. 불행한 얼굴로,라고 말하지만, 오래오래 살자고 하니까 말입니다. 그러나 제인은 죽었습니다. 제인이 살아있는 저곳은 현실보다는 '뉴월드', '환상'이라고 생각하는 게 더 맞다고 생각됩니다. 

 

사실 삶이 계속 불행하다고 이야기하는 것 역시, 죽을힘을 다해 살아가는 누군가에게는 교만한 말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불행의 크기와 고통의 크기는 모든 사람에게 동일할 수 없는 것이지만, 그냥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의 인생도 고통스러울 수 있습니다. 물론 영화의 인물과 스토리는 현실보다는 은유적인 상징일 수 있지만, 영화에서 표현되면 은유보다는 사실 현실로 느껴지다 보니 장면의 잔인함이 환상과 섞이면 너무 괴롭고 마음이 아립니다. 극한에 다다란 인생을 은유로만 쓰는 것은 너무 잔인한 일이 아닐까요?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정말 현실이니 말입니다. 영화 속의 인물들을 안타까워해야 할지, 그들의 고통과 나의 고통을 비교해야 할지, 저는 사실 많이 혼란스러웠습니다. 비교하고 싶지 않고, 동정하고 싶지 않지만,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엔 너무 괴로웠습니다.  

얼마 전에 인기 있었던 <나의 해방일지>에서도 인생의 대부분의 순간은 불행하지만, 웃을 수 있고, 숨 쉴 수 있는 몇 초, 몇 분의 순간을 모아 살아간다는 대사가 있습니다. 인생을 마냥 꽃밭이라고, 행복이라고 부르고, 감사함으로 인생을 가득 채우라고 하는 것은 또한 폭력적인 일일 수 있습니다. 슬프고, 분노하고, 좌절하는 것을 마치 부정적인 것으로 바라보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별 일 없이 지나가주 하루에 그저 그리 나쁘지 않은 나의 오늘 하루에, 지금 내 자신에게 너무 감사하고, 또 이 나쁘지 않은 삶을 이어나가기 위해 좀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조금의 애를 쓰는 것을 스스로 기특하게 여기는 그 조금의 긍정. 조금의 희망. 저는 부디 그런 것들이 꿈속이, 환상 속에만 존재하는 것들이 아닌 두 발 굳건히 붙이고 선 현실의 이야기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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