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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사람을 죽이지 않아

 

1차 세계대전 이후 파시즘이 지배하던 이탈리아의 어느 섬에는 비행술이 뛰어난 돼지 하나가 살고 있습니다. 포르코 로쏘(Porco Rosso). 사람이었을 때 이름은 '마르코 파코트'. 전쟁에 참전하여 전쟁에서 친구를 잃은 그는 그 이후 무슨 이유에선지 마법에 걸려 돼지가 되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영화의 설정에서 제목으로 정해질 정도로 강력하고 특징적인 설정이지만, 마법에 걸려 돼지로 변하는 장면도 나오지 않고, 이 영화 속 그 누구도 그가 돼지인 것을 이상하게 여기거나 낯설게 바라보지 않습니다. 사실 그는 모습만 돼지일 뿐 사람이라고 보는 것이 합당할 것입니다. 더군다나 그는 돼지가 된 마법에서 벗어나 사람이 되고자 하는 마음도 일절 없어 보입니다. 

 

이 영화의 메인 카피는 "날지 않는 돼지는 그냥 돼지일 뿐이야." 였지만, 내게 가장 인상 깊었던 대사는 포르코가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는 설정이었습니다. 그는 공적-하늘의 도적-들을 잡는 현상금 사냥꾼인데, 공적을 쫓으며 자신의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에 놓이더라도 남에게 총질을 하거나, 남을 죽이려고 달려들지 않습니다. 그저 뛰어난 비행술로 그들을 따돌릴 뿐입니다. 사실 이 지점이 이 영화를 여러 번 보게 만들었던 부분입니다. 왠지 모를 반성문 같이 느껴졌다고나 할까요. 한국인이라서 느끼는 감정일 수도 있는 것이지만 말입니다.  

 

돼지에겐 국가도, 법도 없어

 

영화 속에 등장하는 마담 지나의 호텔 아드리아노. 여기에는 세계 각국 수많은 비행조종사들이 모입니다. 아직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시대였던 만큼 거기에 모인 수많은 비행조종사들은 결국 군인이며, 언제든 누군가를 죽일 수 있는 사람들이지만, 그들은 험상궂게 굴다가도 마담 지나 앞에서는 순한 어린양이 됩니다. 

전쟁 중의 중립지대. 그곳을 운영하는 마담 지나는 포르코의 오랜 친구이며 그를 사랑하는 여인입니다. 모두가 선망하는 아름다운 여인이 돼지를 사랑한다는 설정 또한 재미있는데, 지나는 유일하게 포르코를 '마르코'라는 사람 때의 이름으로 부르는 사람입니다. 

돼지에게는 국가도, 법도 없기 때문에 나라를 위해 사람을 죽이며 총을 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 오래된 비행기와 비행기를 설계한 소녀를 지키기 위해 내기 시합을 하게 됩니다. 이 소녀 역시 포르코를 좋아하는데, 마지막에 정확하게 보여주지는 않지만, 시합에 이긴 포르코에게 소녀가 키스를 하자 포르코가 사람으로 다시 돌아온 것 같은 목소리만 들려주며 화면이 끝납니다. 공주의 키스를 받고 사람으로 돌아오는 개구리 왕자의 설화를 가져온 것인데, 보통 사람으로 돌아온 것은 해피엔딩이어야 하지만, 포르코는 오랫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사람이 된 포르코가 다시 전쟁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사라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대목입니다. 

 

벌써 만으로도 여든이 넘은 노장의 미야자키 하야오가 연출한 신작이 10년 만에 개봉합니다. 아직 개봉일은 많이 남아있습니다. 2023년 7월 14일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제목은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라고 합니다. 사실 제목만으로도 충분히 궁금해지는 이야기입니다.

그의 마지막 작품 <바람이 분다>는 2차 대전과 관동대지진과 가미가제를 소재로 한 줄거리와 먼저 본 사람들의 평에 의해 아예 들여다보지도 않았습니다. 일본인인지만 '천공의 섬 라퓨터'와 이 '붉은 돼지'를 통해 내가 읽은 미야자키 하야오는 전쟁의 참상과 그 전쟁을 일으키는 인간의 욕망과 대립점에 있는 순수한 인물들에게 오히려 강인함을 부여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사람이 은연중에 가미가제를 미화했다는 것은 그 역시 본인들의 역사를 미화하고자 하는 일본인일 수밖에 없었던 것인가에 대한 실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의 아날로그 감성 가득한 따뜻한 그림체와 풍경 등을 보고 있으면 그립고 포근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부분입니다. 혁신적이고 새로운 사고방식과 의미를 담고 있는 지금의 선명하고 너무나도 잘 만들어진 입체 애니메이션들도 너무나도 사랑하는 바이지만, 그럼에도 고전이라는 것은 그것이 지니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부디 새로운 그의 작품들이 그 따스함과 강인함을 가지고 있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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