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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 지금 여기

이 영화는 몽글몽글한 느낌의 풍경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 시작은 퍽이나 잔인합니다. 영화의 주인공인 '조 가드너'는 계약직 교사로 일하지만 언젠가는 재즈 뮤지션이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연한 기회로 그 꿈을 이룰 기회를 얻게 됩니다. 그런데 그 순간, 사고로 의식불명의 상태에 빠집니다. 인생에서 최고로 기쁜 일을 눈앞에 둔 순간, 그 기회를 잃게 될 상황에 놓이다니. 영화의 스토리라고는 하지만, 죽음에서 어떻게 서든 도망치고자 하는 조의 심정이 너무나도 이해가 가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죽을 수도 있다는 현실 앞에 공포를 느끼기보다 어떻게 서든 재즈 공연에 다시 서기 위해 여기가 사후세계인지 무엇인지 놀랄 틈도 없이, 죽음마저도 뛰어넘고 다시 살아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조'의 모습은 사실 존경스럽기까지 합니다. 

조는 의식불명의 상태에서 죽음의 길로 가는 길에서 도망쳐 '태어나기 이전의 영혼'들이 있는 곳에 도착합니다. 그 곳에서는 지구로 다시 돌아가 태어날 영혼들이 멘토와 짝을 이뤄 '불꽃'을 찾으면 지구로 다시 태어나게 됩니다. 그때 '지구통행권'을 받게 되는데 조는 그것을 받기 위해 멘토로 위장취업(?)하게 됩니다. 

 

이야기의 주축을 이루는 캐릭터는 정반대의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토록 열정적으로 다시 삶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조와 삶을 다시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있는데도 그것을 끊임없이 거부하는 22. 최근 영혼들의 숫자가 1082억 1012만 1415번쯤 되는 걸 보면 22는 굉장히 오랜 시간 동안 태어나는 것을 거부해온 영혼입니다. 22는 수많은 위인들이 그의 멘토가 되어 '불꽃'을 찾아주려고 했지만, 그 어떤 것으로도 22는 불꽃을 찾지 못했습니다. 지구에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은 22는 지구통행증을 조에게 주기로 하고, 어쨌거나 지구 통행권을 받기 위해 둘은 22의 불꽃을 찾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아이도 없고, 결혼도 하지 않았지만, 이 영화는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할지 고민이 많은 어린 자녀를 둔 부모님들이 보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런 아이들이 보기에는 사실 조금 어렵지 않나 생각도 듭니다. 언젠가 어린 조카가 있다면 아이들과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고도 싶습니다.

그 수많은 것을 경험하고, 거부해 온 22의 불꽃을 찾은 순간은 그 어떤 위대한 결심도, 하고자 하는 것에 대하 열정도 아닌, 그저 삶의 어느 순간, 오롯이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는 한 순간이었습니다. 요즘 세대는 예전처럼 위대한 업적이나 꿈이나 목표를 가지고 사는 세대와는 거리가 좀 있어 보입니다. 요즘은 MZ세대라는 단어로 긍정적인 느낌이 많지만, 한편에는 N포세대라는 표현 역시 많이 쓰입니다. 수많은 것을 포기하고 살아야 하는 젊은 세대. 20대에서 40대 사망률 1위가 자살인 나라에서, 내 어린 자녀가 무엇이 되고 싶고, 어떻게 키워야 할지 어른인 부모 역시 답을 찾기 어려울 때, 그 답이 꼭 위대하거나 대단하거나 남들이 보기에 존경스러운 열정이 없다고 할지라도, 그저 지금 살아있는 이 순간의 행복과 감사함을 오롯이 느끼면서 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삶은 가치 있고, 살아갈만하다는 것. '조'와 같이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열정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다면 너무 행복하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못한 경우 역시 많고 저 역시도 그런 사람 중에 하나기에, 그 순간에 불꽃이 켜졌다는 것이, 마치 제 마음에 불꽃이 켜지는 것 마냥 행복했으니깐요. 

 

살아있는 재즈와 우주를 유영하는 느낌의 일렉트로닉

이 영화는 살아있는 지구의 삶과, 영혼들의 세계를 오가면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살아있는 지구의 삶에서는 재즈가, 영혼들의 세계에서는 일렉트로닉한 음악들이 연주된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음악으로 공간의 느낌을 확 바꾸어버리는데, 음악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이 영화를 보는 순가만큼의 재즈가 주는 그 활기찬 느낌과 정말 박자가 하나하나 다 살아있는 것과 같은 자유로움, 연주자들 간의 호흡, 이런 것들은 조 덕분에 가깝게 경험할 수 있어, 영화를 보면서도 약간 재즈 콘서트를 보는 듯한 느낌으로 즐겁게 볼 수 있는 지점들이 많습니다. 

영혼들의 세계에서 나오는 일렉트로닉들은 꽤나 깔끔하고 신비로운 비트로 짜여져 있어 공간을 유영하는 듯한 느낌의 공간감과 어쩌면 사후세계라는 공간의 기묘한 느낌을 간접체험할 수 있어 음악이 이 영화에서 꽤나 큰 비중을 차지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지금도 꽤나 좋아하는 OST들입니다. 

 

삶이 지치고 힘이 들 때, 어디로 가야할지 보이지 않을 때 보면 누군가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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