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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테일한 내용은 아니지만, 결말을 담고 있습니다. 참고해주세요.

 

온 우주에 존재하는 '나' 중에서 가장 실패한 삶을 살고 있는 나

 

이 영화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우선 '멀티버스' 개념을 알아야 합니다. 최근 마블의 영화에서 '멀티버스' 개념을 토대로 스파이더맨과 닥터 스트레인지 시리즈가 나온 덕에 '멀티버스'는 아주 생경하고 낯선 개념은 아니지만, 여전히 그것을 모르는 누군가에게 설명하려고 하면 머리가 복잡해집니다.

멀티버스(multiverse), 다중우주란, 내가 살고 있는 우주 말고도, 우주 A, 우주 B, 우주 C...처럼 여러 이론적 배경을 가진 우주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닥터 스트레인지 2>에서는 우리의 우주에서는 빨간 불은 정지, 초록불은 출발이지만, 다른 우주에서는 초록불은 정지, 빨간 불은 출발입니다. 다른 우주는 내가 살고 있는 우주와는 전혀 다른 사회적 질서와 물리적 규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이 지구만 해도 각 나라의 문화와 풍습이 다르기 때문에, 저는 '멀티버스'를 그 '다름'의 정도와 물리적인 거리가 극대화된 '우주' 정도의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나 더 체크해야 할 점은 그 수많은 우주에는 수많은 '나'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나 A, 나 B, 나 C... 이것을 평행우주로 이야기하기도 하는데 거기까지 가는 것은 너무 복잡하니 일단 이 정도로 이야기를 마무리하겠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히어로물'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 영화의 히어로는 '에블린'입니다. 에블린은 미국으로 이민온 중국인으로 코인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다정하지만 무능력한 남편, 보수적이고 불만 많은 몸이 불편한 아버지, 자기주장 강한 동성애자 딸. 에블린에게 도움이 되기보단 짐이 되는 가족들만 있고, 그녀는 탈세혐의를 받으면 세탁소 운영이 힘들어질 수 있는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사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저 순간이 얼마나 골치 아프고, 위태로운 순간일지 마음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는 것만 해도 팍팍한 이 순간에, 갑자기 나타난 다른 우주의 '남편'이 내가 우주를 구할 사람이라고 합니다. 

 

혼란 속에서 에블린이 묻습니다. 왜 그 일을 나에게 하라고 하는 것인지. 그것은 우리의 에블린이 이 우주에서 가장 실패한 삶을 살고 있는 에블린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요. 이 우주를 구하는 싸움은 몸싸움이기도 하지만, 그녀는 간절하게 진심을 다해 자신을 위기에 처하게 만든 사무장을 향해 외치기도 합니다. 

 

" I love you."

 

결국은 사랑, 그럼에도 사랑

 

그럼 이 영화의 빌런은 누구냐. 다름 아는 다른 우주의 그의 딸 '조부 투바키'입니다. '조부 투바키'는 수많은 멀티버스와 접속하는 훈련을 하던 중, 너무 극단적으로 훈련의 강도를 끌어올린 다른 우주의 '에블린'에 의해 극한으로 치달아 미쳐버립니다. 그녀는 모든 우주와 접속할 수 있고, 넘나들 수 있습니다. 그런 그녀가 바라는 것은 이 우주의 멸망. 수많은 우주를 넘나들며 그녀는 존재의 허무를 느끼고 소멸되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 소멸되는 길을 혼자가 아닌 '에블린'과 함께 가고자 합니다. 

 

이 영화의 런닝타임은 139분으로 짧지 않습니다. 영화 중반까지는 다른 멀티버스에 접속하여 능력을 당겨오기 위해 하는 개연성이 없는 행동들의 향연이 이어지며, 재밌기도 하지만, 항문에 트로피를 박아 넣는 설정에 다다르면 사실 보기 힘들어지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많이 봤으면 하는 이유는, 이 영화의 '히어로'가 엄마이고, '빌런'이 딸이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의 딸이 '빌런'인 이유는 그녀가 파괴하고자 하는 우주가 사실 그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딸을 낳습니다. 10개월의 수고스러움과 정말 살을 찢는 고통 속에 출산을 하고, 아이가 어린 시절에는 아이의 바이오리듬에 맞춰 생활해야 하기에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하고, 제대로 먹기조차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머니'는 '딸'이라는 우주를 창조하고 육성시킵니다. 그러나 새로 생성된 우주는 이미 새로 생성되었기에, 어머니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문화를 가집니다. 다른 우주의 에블린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우리의 에블린은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스스로 소멸의 길로 들어가는 조부 투바키를 자신의 몸을 던져 구합니다. 그녀는 최고의 쿵후를 구사할 수 있고, 엄청난 능력을 쓸 수 있으나, 그녀가 조부 투바키를 구하는 길은, 각자가 원하는 바를 이해하고, 그저 위험 속으로 자신의 몸을 던지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아이를 향해 달려드는 트럭을 맨몸으로 막은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으신가요? 말 그대로 초인적인 힘. 그것은 딸을 구하려는 어머니이기에 할 수 있는 일이고, 그것을 통해 에블린의 우주는 다시 완성됩니다. 

 

제가 영화를 보다보다, 돌멩이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장면을 보고 그렇게 펑펑 울게 될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습니다. 이 영화는 하다 하다 돌멩이를 보며 울게 만드는 영화입니다. 에블린은 자신이 그렇게 구한 딸을 이해하고, 딸이 자기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을 응원하며 영화는 끝이 납니다. 

 

사실 평행우주니 멀티버스니 하는 단어는 어렵습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바로 옆에 같이 살을 맞대고 살아가는 사람과도 달라서 서로 맞추고 배려하고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살아야 하는 세상입니다. 멀티버스는 결국 이 많은 사람이 그 하나의 우주라는 은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우주를 완성시키는 것은 언제나 사랑입니다. 사랑은 아낌없이 내어주고, 희생하지만, 그 대가를 바라지 않고, 그저 상대방의 안녕과 평화를 바라는 일이 아닌가 합니다. 그 안녕과 평화를 통해 수많은 우주는 완성되고, 성장하며, 공존합니다. 뻔한 결말이지만, 그것이 뻔하지 않으며 지속적으로 성토되는 이유는 그 '사랑'이 현실에 존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일 거라 생각합니다. 부디 모든 이에게 필요한 사랑이 온 우주에 가득하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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