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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빨랐던 그 제트기가 골라 쐈던 건 어떤 말
깃이 털린 날개가 마저 부러졌던 건 어떤 말에
칼럼이 된 도시
탄두가 된 토씨
포로가 된 서시
오 나나나 난
무언갈 잃어야만 어른이 된다면 식어가는 말을 잃어버릴래
나는 밤과 별과 불과 뿔을 품은 시의 유언
나와 도망치지 않을래 유일한 나의 모어야 넌
건투를 빌어 인생은 아마 비속어지
손을 내밀어 말은 중지모드야
잔인하던 은유들을 찢고
자막 없는 마음을 나눌 거야 너와
내 손의 체온은 네가 제일 잘 알고 있잖아
(중복)
저기밖에 사냥꾼이 와
멋진 말로 덫을 덮어 둘 거야
혹시 공룡이 말을 했더라면 아마 그래서 멸종됐을 거야
가사가 너무 좋은 가수의 말에 대한 생각
<말로장생>은 타이틀곡은 아니지만, 저는 이 노래가 발매된 이후 주구장창 차에서 이 노래만 듣고 있습니다. 이승윤 님은 누가 봐도 가사를 너무 잘 쓰는 가수입니다. 노래 한 곡 한 곡마다 얼마나 많은 고민과 사유를 통해 작사를 했을지 느껴져, 새로운 곡이 발매되면 멜로디도 좋지만, 꼭 가사를 하나하나 곱씹어보게 됩니다. '가수'를 '음유시인'이라고도 하는데, 그 단어에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사람입니다.
이승윤 님은 <싱어게인>에서도 재치 있는 언변으로 눈길을 사로잡았던 가수였지만,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사실 이 시점에서 저는 제가 쓰는 글이 '칼럼'이 된 듯하여, 문득 이 글을 멈추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일단 써 내려가 보기로 합니다. 수많은 사람들과 서로의 이익이 상충하는 현대사회는 내가 남보다 좀 더 드러나고 눈에 띄어야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인기'와 '관심'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그러다 보면 남을 헐뜯기도 하고, 함부로 말하기도 하고, 없는 말을 지어내기도 하고, 별 것 아닌 것을 물고 늘어지기도 합니다.
가사에 등장하는 '제트기'와 '탄두', '포로'와 같은 단어들은 전쟁을 떠오르게 합니다. 몇 소절 안 되는데 과거에 누군가에게 말꼬리 잡혀서 고생했던 기억, 직장상사에게 들었던 폭언, 가족에게 들었던 상처되는 말 따위가 떠오릅니다. 그런데 화자는 어른이 되기 위해 '식어가는 말'을 잃어버리겠다고 합니다. 여기서 '식어가는 말'은 누군가에게 성의 없이 뱉은 위로 같은 것들로 생각됩니다. 뒤에 나오는 '내 손의 체온'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들립니다. 사실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오히려 어른이 될수록 더 많이 '식어가는 말'을 던질 것 같은데, - 한 마디에 말에 쏟을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에 - 오히려 그것을 버림으로써 어른이 된다는 것은 더 깊고 따스한 마음을 먹고자 하는 다짐 같습니다. 그런데 재밌게도 곡의 제목이 '말로장생'입니다. 불로장생, 늙지 않고 오래 살기 위해 말로 공격하는 사람보다는 말없이 손을 잡아주는 사람이어야겠다는 이야기 같습니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지만
사실 이 노래도 가사와 멜로디로 저에게 깊은 위로를 주고 있지만, 위로의 순간에 필요한 것이 말이 아닌 경우도 참 많습니다. 그저 말없이 따뜻하게 손을 잡아주고, 안아주고, 등을 두드려주는 것만으로도 백 마디의 말보다 더 큰 위로를 받기도 합니다. 위로를 한답시고 꺼낸 말이 마음이 약해져 있는 사람에게는 장도(長刀)로 베어버린 것 마냥 큰 상처를 남길 수도 있습니다. 이 노래는 말없이 손을 내밀고, 마음을 나누는 순간을 이야기합니다. '잔인한 은유들을 찢'어 버리는 마당에 좋다고 글을 써대고 있는 제 스스로가 너무 모순되게 느껴지지만, 가사가 너무 좋아 또 글을 안 쓸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건투를 빌어, 인생은 아마 비속어지' 라고 되뇌는 저 말이, 가슴에 훅 박혀서 얼마나 위로가 되었는지 또 모릅니다. 항상 저런 가사가 마음에 박히는 날은 정말 비속어를 입에 한가득 물고 차마 뱉어내지 못한 하루이니까요. 그 순간에 또 내가 뱉어내지 못한 비속어를 알아봐 주는 누군가의 가사 한 줄이 어깨를 툭툭 쳐주고 지나가는 듯한 느낌입니다. 건투를 빈다고. 이 전쟁 같은 세상에서 늙지 않고 오래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 툭 쳐준 어깨를 펴고, 입을 다문 채 누군가의 손을 잡아주는 사람이 되어보려 갑니다. 나도 누군가의 건투를 빌어주어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