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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로 잰 듯한 아름다움, 웨스 앤더슨

 

2021년 11월 27일부터 2022년 7월 24일까지 그라운드 시소 성수에서 <우연히, 웨스 앤더슨> 전시가 있었습니다.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프렌치 디스패치>는 2021년 11월 18일에 개봉했습니다. 저는 둘 중 하나를 놓고 고민했습니다. 영화를 볼지, 전시를 볼지.

웨스 앤더슨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감독입니다. 모두들 한 번쯤은 보셨을 법한 그 핑크색의 너무나도 예쁜 호텔을 배경으로 한 영화 말입니다. 전시도 굉장히 좋았겠지만, 그래도 영화감독이라면 움직이는 화면의 미학이 더 매력적이지 않을까 해서 저는 영화를 보기로 결정했습니다. 둘 다 갔으면 좋았겠지만, 그 시즌에는 그럴 여력이 되지 않았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대표 이미지로 사용한 저 장면에서는 마치 메트로놈처럼 종이 일정한 간격으로 울립니다. 저 건물은 잡지사 건물입니다. 잡지사 입구에서 방금 발간된 잡지를 싣고 있습니다. 종소리에 따라 지나가는 자전거와 오토바이, 개를 산책시키는 행인, 열리고 닫히는 창문이 움직입니다. 분명히 개연성이 있는 장면들이고 낯설지 않은 풍경이지만, 이 영화에서는 모든 장면들이 묘하게 부자연스럽고, 하나하나 자로 잰 듯 정확하게 아름다울 수 있는 위치와 리듬으로 등장했다가 사라집니다. 

덕분에 이 영화는 보는 내내 편안함 마음으로 보기보다는 정말 전시에서 이 작품의 의미를 찾아내기 위해 골몰하며 바라볼 때처럼 약간의 긴장감을 유지한 채 영화를 보게 됩니다. 싫지 않은 이유는 그 모든 장면이 너무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프렌치 디스패치>는 잡지의 이름입니다. 이 잡지사의 편집장이 갑작스레 사망합니다. 향년 75세. 편집자는 유언으로 자신이 사망하는 동시에 잡지사의 출간을 영구히 중지할 것을 유언으로 남깁니다. 마치 남편이 사망하면 아내를 같이 묻었던 고려장처럼 잡지는 마지막 출간을 앞두게 되고, 영화는 그 마지막 잡지에 실리는 기사들에 대한 내용을 보여줍니다.

 

자로 베어버릴 것 같은 서늘함, 프랜치 디스패치

 

잡지에 실리는 각 칼럼의 제목입니다. 칼럼 별로 스토리가 진행되는 옴니버스 형식으로 영화는 구성됩니다.

1. 지역색 섹션 ; 자전거 타는 기자, 허브세인트 새저랙 - 300 단어로 쓰는 도시 스냅숏
2. 예술과 예술가 섹션 ; 콘크리트 걸작 - J.K.L. 베렌슨 - 어떤 화가와 어떤 그림의 초상
3. 정치/시 섹션 ; 이야기 2 - 선언문 개정 - 루신다 크레멘츠 - 청년 운동 일지
4. 맛과 냄새 섹션 ; 이야기 #3 - 경찰서장의 전용 식당 - 위대한 셰프의 단평
5. 쇠락과 사망 섹션 ; 후주

No crying.
편집자의 죽음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꽤 많은 죽음과 범죄와 비극이 등장하는데, 그 모든 죽음과 범죄는 마치 하나의 사물처럼 이야기 안에 존재합니다. 편집자의 죽음 앞에 눈물을 터트리는 사람을 향해 말합니다. No crying.

분명히 기획되고 계획된 것이 분명한 아름다운 화면과 죽음과 범죄, 비극 앞에서도 눈물 흘리지 않는 건조한 내레이션은 너무나도 아름다움에도 분명하고 서늘하고 잔인합니다. 그 기묘한 간극이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이자 매력이라고 생각되긴 합니다. 불쾌하면서 아름답고, 인간적이면서도 비인적인.

각각의 스토리들은 사실 꽤나 자극적인 요소가 많아 각각은 짧은 에피소드 들임에도 불구하고 2,3,4번이 계속 메인디쉬처럼 흘러나와 4번 에피소드를 볼 때쯤에는 약간 지치는 듯도 합니다. 그래서 한 번 보는 것보다는 여러 번 보았을 때 좀 더 영화가 이해되는 면은 있었습니다. 

영화 전체의 분위기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은 마지막 장면이었습니다.
이야기의 전체 틀을 이루는 편집자의 죽음은 편집자장으로 치러집니다. 편집자장이라 하면 편집자에 대한 존경과 애정으로 치러지는 것일 텐데, 편집자는 자신이 쓰던 책상 위에 그저 흰 천만을 덮은 채로 누워있습니다. 그 모습은 묘하게 부검실에 놓인 시체를 연상하게 하는데, 그 연상과는 다르게 화면의 색감은 파스텔톤으로 따듯하고, 예쁩니다. 예쁜 시체.  

자신의 생일날 심장마비로 사망한 편집자의 생일 케이크를 웨이터는 편집자가 죽은 줄도 모르고 들고 들어옵니다. 웨이터는 짐작컨대 매일 편집자를 만나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죽음 앞에 놀라지 않고, 1초의 멍해짐도 애도도 없습니다. 그 편집실에 모인 이들은 생일 케이크를 나눠 먹습니다. 그 모습은 애도나 관습보다는 그저 배고프고, 케이크가 먹고 싶어서 행해지는 느낌을 줍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묘하게 토할 것 같은 느낌인데 편집실에 모인 사람들은 다 같이 문장을 만들어가며 잡지의 부고란을 만들어갑니다. 자신들이 몸담고 있던 잡지의 부고. 깊은 애정과 이해가 있어야 가능한 그 마지막을 끝으로 마지막 문장을 들려주지 않고 영화는 끝이 납니다. 

영화의 모든 장면은 앞서 말한 것처럼 자로 잰 듯한, 하나하나 미학적으로 구성된 화면과 흐름을 보여주기 때문에 스토리를 신경 쓰지 않고 아무 생각 없이 화면만 봐도 분명히 만족감이 있습니다. 1시간 48분짜리 앉아서 보는 미술전시라고 생각해도 좋은 정도입니다. 영화 소개에 이 영화의 장르는 코미디,라고 되어 있는데, 이 영화가 코미디라면 분명 블랙코미디입니다. 아름답고 예쁜 블랙코미디를 좋아하신다면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 역시 돈을 받고 하는 광고는 아니지만, 상영이 끝난 이 영화는 디즈니플러스에서 볼 수 있습니다. 티빙에서도 볼 수 있지만, 정기구독을 하더라도 추가 결제를 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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